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야 소피아 (문단 편집) ====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재건 ==== [[파일:external/www.byzantium1200.com/hagia1.jpg]] [[파일:external/www.tateville.com/hagiasophia-12thc.jpg]] 대성당이 전소된 지 열흘 후인 532년 2월 23일, [[유스티니아누스 1세]]는 아야 소피아의 재건을 결정하면서 이전보다 더 [[크고 아름다운]] 건물을 바라며 물리학자인 밀레토스의 이시도로스(Isidoros)와 수학자인 트랄리스의 안시미오스(Anthemios)에게 설계를 맡겼다. 유스티니아누스는 그의 정복 사업이 그러하였듯이 이 공사에도 엄청나게 빠듯한 기한을 주고 닥달했다. [[그리스인]]인 두 사람은 전문적인 건축가가 아니었지만 [[공밀레|1만 명 이상의 인력이 동원되어 532년부터 537년까지 채 6년도 걸리지 않은 공사기간]]을[* 600여 년이 지난 서유럽에서 [[노트르담 대성당]]을 짓는 데에 100여 년이 걸린 것을 생각하면...]통해 당시까지 사상 유례가 없는 광대한 규모의 대성당을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. 대성당의 건설을 위해 제국 전역에서 각종 자재들이 공수되었는데, 이 과정에서 [[세계 7대 불가사의]] 중 하나였던 [[에페소스]]의 [[아르테미스 신전]]이 원기둥들을 징발당하는 불운을 겪었다. 마침내 537년 12월 27일, [[유스티니아누스 1세]] 황제가 참석한 가운데 [[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]] 메나스가 집전한 아야 소피아 대성당의 축성식이 거행되었다. 이때 대성당의 웅장함에 감동한 황제는 아야 소피아가 [[솔로몬]]이 지은 성전을 능가했다고 생각해 '''"솔로몬이여, 내 그대를 이겼노라!"'''라고 외쳤다는 일화가 있다. 완공 이후 아야 소피아 대성당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의 주교좌가 위치한 [[정교회]]의 총본산으로 자리매김했으며, 동로마 제국 역대 황제와 황후의 대관식을 비롯한 중요 정치적·종교적 의례가 거행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. 또한 오랜 세월에 걸쳐 수집된 다양한 [[성유물]]들이 봉안된 성소 중 하나이기도 했지만 1204년 [[제4차 십자군 원정]]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면서 십자군에게 털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